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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능력에 의지한 믿음/신앙에세이

당신이 누구인지 새롭게 정의하라

by 바람처럼 불처럼 2023. 3. 25.

골로새서 3장 1절~4절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새로움 이라는 것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용하던 컴퓨터가 느려졌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재부팅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도 안되면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을 지웠다 다시 설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고도 안되면 아예 컴퓨터를 포맷하고 운영체제부터 다시 설치해 사용하면 새 컴퓨터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다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신도 그렇고 육체도 그렇습니다. 사람 관계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땜질해 가듯 살다보면 처음보다 더 큰 문제에 닥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새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야기합니다. 불안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시작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새로 덧칠하고 땜질하고 꿰매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듯 너덜너덜한 쓰레기처럼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안주합니다. 지금이 제일 좋다고 스스로 안위합니다. 세상은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뭔가 좀 새롭게 할려고 하면 '욕심부리지 마'라고 합니다. 뭔가 바꿔보려고 하면 변덕스럽다고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면 이상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런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일뿐입니다.

 

 죽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컴퓨터를 리셋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원을 꺼야 합니다. 나는 심방세동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심방세동인지도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행한 치료법이 '전기충격술'이었습니다. 그것은 심장에 직류전기를 흐르게 해 충격을 주어 일시적으로 심장의 율동을 멈추게 한 후 재생시키는 시술입니다. 후에 재발되기는 했지만 그 시술 후에 심장이 정상적으로 박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죽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오늘 본문 말씀 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라는 단어를 보니 한번 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도 함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았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이치가 마찬가지입니다. 죽어야 새로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시작이다

 지금의 내가 나인 것은 과거의 결과물입니다. 심지어는 나의 과거가 아닌 부모의 과거가 나의 현재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현재의 나의 모습의 어떠함은 과거 나의 습관, 관습, 생각, 환경, 성격, 행동 등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매일매일 과거의 열매를 따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나의 습관, 관습, 생각, 환경, 성격, 행동이 미래의 나를 결정짓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래에 내가 먹고 있을 열매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장밋빛 미래를 꿈꿉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그는 부자의 열매를 기대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부자를 꿈꾸지만 부자는 될 수 없습니다. 미래의 나를 그려보고 거기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나의 모습을 바꿔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 새롭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루에 6만 가지 일을 생각한다고합니다. 그 중에 95퍼센트는 어제와 똑같은 일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 생각의 80퍼센트는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비록 오늘을 살아도 어제에 갖혀있는 삶입니다.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부정적인 모든 일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십시요.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인 것들을 경험하며 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중에서도 기쁘고 감사한 일들을 기억하며 그것들을 인생의 스토리로 말합니다. 그 사람의 스토리는 언제나 밝습니다. 잠언 22장 24절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울분을 품지는 마십시요. 울분을 품고 있으면 미래도 그 울분에 갖히고 맙니다. 울분은 전염이 됩니다. 내 울분이 아닌데도 함께 울분하게 됩니다. 

  긍정이 부정을 이기기 위해서는 한번의 부정이 있으면 세번의 긍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든 감사한 일을 세가지 생각해 내십시요. 비록 물리적인 지금의 환경을 바꿀 수 없지만 생각으로는 당신의 환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환경은 당신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위대한 인물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딛고 탄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투성이 이지만 위엣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긍정입니다. 한번 죽었는데 다시 생명을 얻은 것 만큼 긍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자, 그런 생각과 마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정의해 보시겠습니까?